2024-04-27 21:21 (토)
꽃 통해 유토피아·자연 속살을 화폭에 담다
꽃 통해 유토피아·자연 속살을 화폭에 담다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3.24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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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원자
'다시, 봄' 창원 전시
김원자 화가
김원자 화가

야외에 나가서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꽃을 직접 키우며 교감하고, 그것을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 생명의 영원성에 대한 갈구를 담아낸다. 꽃들을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화가가 있다.

지난 20일 오후 창원문화재단 초대작가전이 열리고 있는 성산아트홀 제2전시실에서 김원자 화가의 '다시, 봄' 전시를 돌아봤다. 개막식이 시작되기 전에 김 화가를 만나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들었다. 전시실은 봄기운으로 생동하고 있었다. 다시 봄이 온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가 전시된 꽃 그림들 사이에서 들렸다. 발걸음은 경쾌했고 보는 눈도 즐거웠다. 지금까지 봐 온 한국화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먹을 먹인 후 화선지를 입혀서 그 위에 그림을 그려서인지 살짝 차분했다. 마냥 들뜨지 않은 색감이었다. 격조 높은 봄의 향연이 시작됐다.

오렌지빛을 머금은 스카프를 두른 화가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식물을 직접 키우고 그것을 그리다가 다시 다른 식물이 자라면 그 식물도 함께 그린다고 한다. 이를테면 해바라기를 키우다가 그곳에 도라지가 나오면 도라지를 그려 넣고 수레국화가 피면 또 수레국화를 그려 넣는다. 생명이란 것은 장소라는 공간 속에서 시기가 맞으면 에너지를 품고 외부로 나온다. 외부로 나온 생명을 반갑게 환영하며 화가는 그리는 그림 속에 그려 넣는다. 화엄의 세계가 보였다.

해바라기 꽃밭의 거위 80호 F 삼합지에 분채 옻칠 자개
해바라기 꽃밭의 거위 80호 F 삼합지에 분채 옻칠 자개

화엄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것들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장엄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조화로움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꽃이 있으니 나비가 있고, 해바라기밭으로 거위가 놀러 나오고 그 꽃들 사이에 다른 꽃들이 핀다. 한 가지만 키우고 다른 것들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뚫고 나오는 다른 개체들을 맞아들이면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 그 땅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면 그것을 받아 들이고 또 다른 동물이 놀러 오면 그 동물마저 화폭 속으로 들어간다. 그 장소에 있는 것들은 모두 소외됨 없이 다 같이 춤을 추고 있다.

김 화가의 그림에는 꽃과 함께 동물들이 등장한다. 꽃과 동물들을 밀접하게 관찰하면서 생명의 신비함과 원초적 에너지를 얻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해바라기 꽃밭의 거위' 그림은 김 화가가 강렬한 뙤약볕 아래에서 힘겹게 아로니아를 따고 있었는데, 화가의 고된 노동을 날로 먹으러 온 거위와 맞닥트렸다. "거위 녀석은 지천에 널려 있는 먹이를 두고, 하필 내가 힘들게 따둔 바구니 안의 아로니아를 강탈한 것이었다. 깔깔 웃으며 그 녀석을 바라보다가 한없이 사랑스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동백 미인도' 그림은 동백꽃에 신윤복의 '미인도'를 병치시켰다. 과거와 현재를 공치해보려고 한 것이다. 작품 속 신윤복의 여인상은 과거와 현재를 소통하는 출구로서 화가가 지향하고 있는 이상향을 드러내는 대상이다. 이 그림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아름다움의 근원적 탐색을 위해 도발적으로 시도한 그림이다.

동백 미인도 20호 F 삼합지에 분채 옻칠 자개
동백 미인도 20호 F 삼합지에 분채 옻칠 자개

김 화가는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에는 선배들 작업실의 테라핀향과 유화냄새, 서양화의 굵고 거친 마티에르에 매료됐다. 그러나 화선지 위에서 펼쳐지는 먹의 오묘한 번짐과 사혁의 육품론을 배우면서 수묵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김 화가는 그림을 배우면서부터 지금까지 "중국 남제 말기의 화가인 사혁의 화육법 중 '골필용법'과 '기운생동'은 한국화를 전공하면서 모든 화론의 으뜸이자 중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고 했다.

김 화가에게는 꽃이 빛이다. 자신만의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서 빛에 대해서 생각했다. 빛은 어디에서 올까. 빛은 어둠에서 온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화폭 속에서 구현해 낼 것인가. 어둠을 먹으로 표현하고 그 위에 수많은 분채로 덧칠을 하면서 서서히 밝은 빛의 채색을 완성해 가는 것이 작업 방식이라고 했다.

새로운 기법을 위해서 자개농과 자개상의 아름다움을 접목하려고 옻칠을 먹인 화지 위에 먹을 뿌리고 분채를 쌓고, 거기에 자개를 한올 한올 수놓는 시도를 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에서 자개를 수놓은 시도를 볼 수 있다.

매화나무 20호 F 삼합지에 분채 옻칠 자개
매화나무 20호 F 삼합지에 분채 옻칠 자개

김 화가는 이번 전시의 도록 서문에서 '나는 관념(idea, 觀念) 속 꽃이라는 소재를 차용해 이성과 감성의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또한 자연의 비의(秘意)를 화폭에 담아내려고 고투하고 있다. 꽃은 장식하거나 과장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그러함(自然)으로 특유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자연은 인간인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자연을 담아내는 화가에게 자연은 또 무엇일까? 자연을 담아낸 그림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느끼고 생각하는 바는 각각 다르겠지만 꽃을 보며 그저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연발하기 위해 그림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보는 자에게 주어진 자연과 그림 속의 자연과 우리 내면 속에 담긴 자연을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간은 어떤가? 자연은 땅속에서 땅 위에서 끝없이 호흡하고 생명의 기운을 멈추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은 아름답기 위해서, 선하기 위해서,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멈추지 않고 선을 향한 노력을 해야만 잠시 아름다움을 피워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김 화가의 그림 앞에서 해봤다.

김 화가의 그림 속의 정돈된 꽃들이 아닌 야생의 꽃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고 말을 건다. 접시꽃들이 해바라기들이 동백꽃이 도라지꽃이 말을 건다. 너는 너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자연스럽게 품어내고 있냐고 묻는다. 생동하는 꽃들의 에너지가 춤추게 한다. 봄의 왈츠 음악이 흘렀다면 리듬에 맞춰 춤을 췄을 것이다.

김원자 화가 프로필

김원자 화가는 창원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며 마산미술협회 한국화분과위원장 등 여러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단체전 200여 회를 열었다. 개인전은 1회 2008년 초대개인전 '꽃과 나비'(서울 논현동)전시를 시작으로 현재 9회차 창원문화재단 초대작가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다음 달 1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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